캠페인 고단한 삶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선물상자’, 기프트하우스 캠페인 시즌9 집들이 2023.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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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행복 누릴 거라곤”… 고단한 삶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선물상자’, 기프트하우스 캠페인 시즌9 집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집 주변을 한참 둘러봐요. 그 많던 쥐들이 다 어디로 도망갔나 싶어서. 매일 밤 ‘찍찍’거리는 소리에 잠까지 설칠 정도였는디… 신기하게 코빼기도 안 보이네요.(웃음)” 조순녀(가명‧76) 할머니가 들뜬 목소리로 말을 잇습니다. 새집 새하얀 벽지를 배경으로 미소 짓는 할머니의 모습이 유독 더 화사해보이네요. 새 집에 들어온 지 열흘 남짓에 불과하지만, 집안 곳곳을 소개하는 손길에는 벌써 익숙함이 묻어납니다. 따신 물이 콸콸 나오는 화장실, 허리를 곧게 펴고 일할 수 있는 주방, 습기 없이 쾌적한 안방… 할머니의 기분 좋은 소개가 한동안 이어집니다. 주거환경 만큼 많이 바뀐 것은 할머니의 마음가짐인데요. 이제 더 이상 부러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는 말을 몇 번이고 강조합니다. “요즘엔 되게 일찍 눈이 떠지더라고. 새 집 창 너머로 해를 쳐다보는 기분이 참 좋거든요. 뭣보다 열심히 씻게 돼. 깨끗한 집에 있으니까 나도 더 말끔해지고 싶나봐. 청소는 뭐 말할 것도 없고. 한번이라도 더 닦고 정리하게 되더라고. 뭐랄까… 마치 새댁이 된 기분이에요.(웃음)” “새집에 오니 새색시가 된 것 같다”고 말하는 조순녀(사진) 할머니 평생의 응어리 눈 녹듯 사라져…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 햇살이 따사로운 가을의 중턱, 전남 고창군 상하면에 조순녀 할머니를 찾아 갔습니다. ‘기프트하우스 캠페인’ 시즌9의 주인공이 바로 할머니였죠. 기프트하우스 캠페인은 낡고 오래된 주택에서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는 재난위기가정에 모듈러 주택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지난 2015년부터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와 현대엔지니어링이 함께 해온 캠페인으로, 지금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총 36세대에 희망을 선물했죠. 지난 6월, 할머니를 처음 찾았을 때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만큼 어둡고 고단한 할머니의 사연도 들을 수 있었죠. 칠십 평생 차곡차곡 축적된 고생으로 심신이 많이 지쳐있던 할머니. 설상가상 주거 환경이 급속도로 나빠지며 너무나 열악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당시 할머니가 머물던 공간은 집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였어요. 집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인 비바람조차 피할 수 없었으니까요. 집안에 침습한 빗물로 집안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겼고, 물먹은 천장과 벽지가 아무렇게나 덜렁거릴 정도였습니다. 얼기설기 붙어있는 나무 합판들도 너무나 위태로워 보였죠. 여기에 쥐와 벌레가 들끓어 위생상으로도 문제가 심각했어요. 3개월이 훌쩍 지나 다시 찾은 집터에는 전혀 새로운 모습의 보금자리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아담하지만 야무지고, 단단하지만 정감 있는 모습. 바로 ‘기프트하우스’입니다. 기프트하우스는 공장에서 제작을 마친 후 현장으로 운송 및 설치되는 모듈러 공법으로 세워지는 주택입니다. 집의 기초가 되는 골조, 단열, 창호, 전기, 난방, 외단열, 마감, 지붕, 가구 설치 등이 모두 공장에서 이루어지고, 집터에서는 지반 기초공사만 진행하면 됩니다. 집이 옮겨오면 현장에서 캐노피, 창고, 데크 등을 설치한 후 각종 전자제품과 전기급수를 연결하여 마무리 합니다. 조순녀 할머니를 위한 ‘기프트하우스’ 전경 오직 할머니만을 위한 기프트하우스의 공식 입주식은 지난 9월 중순이었어요. 하지만 할머니를 위한 행사에 할머니는 함께 할 수 없었죠. 고질병이던 협심증으로 허리가 말썽을 일으켰기 때문인데요. 서울에 있는 전문 병원에서 허리 수술을 받고 무려 40여일이나 병원 신세를 져야 했죠. 오랜 기다림 덕분일까요? 새집이 주는 감동은 벅찼어요. 당시의 벅찬 마음을 회상하는 할머니가 또 눈시울을 붉힙니다. “내 인생에 이렇게 큰 복이라니…너무 낯설었어요. 이 세상에서 이런 행복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말 그대로 너무 행복했어요. 이 집에 들어서니까 신기하게도 평생 맺혀있던 게 많이 풀리더라고요. 지금까지 고생하고 속 썩었던 마음들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어요. 그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새 집의 문 앞에서 손님을 맞는 조순녀 할머니
기프트하우스는 폭 3m, 길이 9m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크기는 8.4평 정도입니다. 그 안에 방, 주방 및 거실, 화장실, 붙박이장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요. 특히 할머니 같은 1인 살림에 안성맞춤이죠. “주방이 젤로 맘에 들어요. 예전에는 대야 가져다 놓고 허리 굽혔다 폈다하며 썼거든. 지금은 허리아파서 그럴 수도 없는데… 세탁기랑 인덕션, 냉장고 같은 것들도 참 단정하니 쓰기 편하고요.” 할머니는 새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 주방 기프트하우스가 전달되는 곳 대부분이 시골 지역이다 보니 기후 문제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요. 기밀 및 단열 성능에 가장 신경을 쓴 것도 그 때문입니다. 2중 구조의 지붕과 기밀성능 1등급 창호로 어르신들의 불안을 말끔히 해소했어요. 여름에는 습기, 겨울에는 한기로 고생하던 할머니도 한 시름 놓게 되었죠. 할머니가 몇 번이고 “너무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이라고 되뇌는 이유입니다. 3개월 전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던 지붕은 이제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하고 튼튼한 모습입니다. “환하고 말끔해진 집, 마음까지 마냥 환해지네요.” 할머니는 정말 악착같이 살아왔습니다. 칠십 평생 숱한 고생을 했고, 갖은 상처를 떠안아야 했죠. 하지만 결코 주저앉지 않았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과 감사를 먼저 찾았고, 그렇기에 버티어 낼 수 있었죠.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건 가족의 부재입니다. 몇 번의 결혼을 실패하면서 결국 남편의 빈자리를 남겨둘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고스란히 자식의 빈자리로 이어졌죠. 할머니가 가장 아쉬운 건 새색시처럼 살아본 경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새집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에 “죽기 전에 단 몇 년 만이라도 새색시가 된 것 마냥 예쁘게 꾸며놓고 살아보고 싶다”고 답했던 이유도 그래서겠죠. 천주교 신자인 할머니는 어떤 상황에서든 ‘감사’를 잊지 않습니다. 새집을 맞은 지 열흘 남짓, 할머니의 바람은 이뤄졌을까요? 할머니는 배시시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새색시처럼 사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괜스레 자주 씻게 되긴 해요. 머리라도 한 번 더 감고 곱게 있고 싶더라고요. 아무리 나이 들어도 그런 기분이 생긴다는 게 참 신기하죠?” 비단 겉모습만이 아닙니다. 환하고 말끔해진 집에서 할머니 역시 오래 묵은 앙금을 많이 털어냈습니다. 유난히 박복했던 자신의 팔자보다 자신을 돕는 따뜻하고 세심한 손길들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새로이 입주하는 과정에서 30년 묵은 살림들을 많이 거둬냈다고 해요. ‘언젠가 쓰겠지’라는 생각에 켜켜이 쌓아두기만 했던 것들입니다. 할머니는 “내 죽은 뒤에 누군가 버려야 할 것들을 내 손으로 과감히 버렸다”면서 “아까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속이 시원하고 기분이 상쾌해지더라”는 말로 새로운 삶의 각오를 다졌습니다. “허리가 낫는 대로 집 앞 텃밭을 꽃과 채소로 가득 채우고 싶다”는 조순녀 할머니 주거 환경의 회복을 통해 마음의 회복을 얻어낸 할머니는 이제 더 활발히 세상과 소통하려고 해요.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려는 계획 역시 그중 하나죠. 할머니는 “남편 자랑, 자식 자랑은 못해도 이제 내 집 자랑은 할 수 있다”며 웃어 보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던 성당 식구들이 첫 번째 손님이 될 것 같습니다. 새 봄이 찾아오면 ‘버킷리스트’였던 텃밭 가꾸기에도 도전할 생각입니다. 내가 먹을 채소 정도는 직접 심고 가꾸고 싶다는 바람이 컸었거든요. 수술 받은 허리가 빨리 나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네요. 여러모로 새집은 할머니에게 자꾸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듭니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늘 외롭고 고단했어요. 자연스레 원망을 많이 하며 살았는데…이제 다 풀린 기분이에요.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았으니까요. 이 집에 들어오고 난 이후엔 매일이 행복해요. 아침에 눈 뜨는 것마저 기쁠 정도로요. 얼마 남지 않은 삶, 지금 이 기분을 잘 간수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